변화의 바람이 불어오다.
2025년 1월 6일, 나라장터 시스템이 완전히 새로운 모습으로 태어났다. 20년 만의 대대적인 개편이었다. 아침 일찍 사무실에 출근해 컴퓨터를 켜고 새로운 시스템에 로그인했을 때, 접속을 할 수 없었다. 차세대 나라장터로 등록을 해야 하는 것 때문에 사이트가 폭주된 상황이었다. 이틀 후 마주한 나라장터 화면은 충격적이었다. 기존의 친숙한 인터페이스는 온데간데없고, 완전히 다른 세계가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이게 나라장터가 맞나?" 혼자 중얼거리는 말투에 당혹감이 묻어났다.
새로운 시스템은 단순한 업그레이드가 아니었다. 기존 나라장터의 이름만 남긴 채, 모든 것이 바뀌었다. 특히 과거 발주 이력을 확인하던 사이트는 '조달 데이터 허브'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변경되었고, 그 기능과 구조도 완전히 달라졌다.
이 변화는 업계 전체에 충격을 주었다. 20년 동안 나라장터 컨설팅을 해온 전문가들도 당황했고, 심지어 공공기관의 조달 담당 공무원들조차 혼란스러워했다. 모든 것을 처음부터 다시 배워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이커머스의 교훈
새로운 시스템을 살펴보면서, 자연스럽게 과거 이커머스 사업을 하던 시절이 떠올랐다. 2019년, 처음 이커머스 시장에 뛰어들었을 때가 생각났다. 그때도 지금처럼 모든 것이 새롭고 낯설었다.
처음에는 국내 도매 사이트에서 시작했다. 그러다 점차 시야를 넓혀 중국 제품 소싱으로 발을 넓혔다. 알리바바, 타오바오, 1688.com 등 중국의 주요 B2B, B2C 플랫폼을 뒤지며 새로운 제품을 찾아다녔다.
중국 제품을 소싱하면서 가장 놀라웠던 것은 그들의 빠른 성장 속도였다. 2~3년 전만 해도 '싸구려' 취급을 받던 제품들이 어느새 품질면에서도 경쟁력을 갖추기 시작했다.
"이런 제품이 중국에 있어?" 처음 샘플을 받아보고 직원들과 나눈 대화가 기억난다. 완성도 높은 제품들이 쏟아져 나왔고, 가격은 여전히 경쟁력이 있었다.
특히 충격적이었던 것은 그들의 기술력이었다. 스마트폰 액세서리, IoT 기기, 전자제품 등에서 중국 기업들은 이미 세계 시장을 장악하고 있었다. 심지어 일부 제품은 한국이나 일본 제품보다 더 혁신적인 기능을 탑재하고 있었다.
반면, 한국 제품을 해외에 판매하려 할 때는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아마존에서 한국 제품을 판매하려 했지만, 화장품이나 김, 라면 같은 일부 품목을 제외하면 경쟁력을 찾기 어려웠다.
가장 큰 문제는 제조업 기반의 약화였다. 2000년대 초반부터 한국의 제조업은 급격히 쇠퇴했다. 젊은 인재들은 제조업 대신 의사, 변호사, 공무원 같은 안정적인 전문직을 선호했고, 제조 현장의 기술 전수는 점점 끊어져갔다.
결국 우리는 중국 제품을 소싱해 자체 브랜드로 판매하는 방향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윤리적으로 옳은지에 대한 고민도 있었지만, 직원들의 급여를 지급하고 회사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현실적인 선택이 필요했다.
전환점은 알리바바가 11번가 인수를 추진한다는 뉴스였다. 중국 거대 기업이 한국 이커머스 시장에 직접 진출한다는 소식은 큰 충격이었다. 이는 단순한 기업 인수가 아니라, 한국 이커머스 시장의 판도가 완전히 바뀔 수 있다는 신호였다.
나라장터의 혁신 - 이커머스의 경험이 빛나다.
새로운 조달 데이터 허브를 자세히 살펴보면서 흥미로운 점을 발견했다. 이커머스 플랫폼에서 사용하던 많은 기능들이 그대로 구현되어 있었다. 특히 다음과 같은 부분들이 눈에 띄었다.
첫째, 키워드 분석 시스템이다. 이커머스에서 상품을 등록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키워드 선정이었다. 어떤 검색어로 얼마나 많은 조회 수가 있는지, 실제 구매로 이어지는 비율은 어떤지 등을 분석했던 경험이 떠올랐다. 새로운 조달시스템도 비슷한 방식으로 작동했다. 특정 품목의 검색 빈도, 실제 발주 건수, 낙찰률 등을 한눈에 볼 수 있었다.
둘째, 이미지 기반 검색 기능이다. 이커머스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이미지 검색을 통해 유사 상품을 찾는 기능이 있었다. 새로운 조달시스템에서도 제품 이미지를 업로드하면 관련된 세부 품명을 추천해 주는 기능이 추가되었다. 이는 복잡한 조달 용어를 모르는 신규 업체들에게 특히 유용해 보였다.
셋째, 카테고리 체계의 정교화다. 아마존이나 알리바바처럼 체계적인 카테고리 구조를 갖추게 되었다. 이는 제품 검색과 등록을 훨씬 수월하게 만들었다.
현장의 혼란과 기회
"아, 이전 시스템에서는 이렇게 하면 됐는데..." "이 자료는 어디서 찾아야 하나요?"
매일 아침 사무실에서 들리는 목소리들이다. 20년 가까이 나라장터를 다뤄온 베테랑들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이런 혼란 속에서 나는 오히려 기회를 보았다.
"이제 모두가 같은 출발선에 선 겁니다."
회의 때 한 이 말은 단순한 위로가 아니었다. 실제로 지금이야말로 새로운 기회의 순간이었다. 기존의 경험이 오히려 걸림돌이 될 수 있는 상황, 완전히 새로운 게임의 룰이 만들어지는 시점이었다.
나는 이커머스에서의 경험을 적극 활용하기 시작했다.
첫째, 키워드 분석 방법이다. 이커머스에서 상품 등록할 때 했던 것처럼, 다양한 검색어 조합을 시도해 보았다. 놀랍게도 같은 제품이라도 어떤 키워드로 등록하느냐에 따라 노출 빈도가 크게 달라졌다.
둘째, 시장 분석 방법이다. 이커머스에서 경쟁사 분석하듯이, 각 품목별로 등록된 업체 수, 평균 낙찰가, 발주 주기 등을 체계적으로 정리했다. 이를 통해 우리가 진입할 만한 틈새시장을 발견할 수 있었다.
셋째, 데이터 시각화 활용이다. 엑셀로 각종 데이터를 정리하고 그래프로 만들어 트렌드를 분석했다. 이는 향후 입찰 전략을 수립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앞으로 6개월이 승부의 분수령이 될 겁니다."
팀 회의에서 강조한 말이다. 왜 6개월일까? 보통 새로운 시스템이 안정화되는 데 걸리는 시간이 3-4개월. 여기에 사용자들이 적응하고 새로운 패턴이 만들어지는 데 필요한 시간 2-3개월을 더하면 약 6개월이 된다.
이 기간 동안 우리는 다음과 같은 전략을 세웠다.
- 일일 학습 시간 확보
- 매일 아침 1시간은 새로운 시스템 탐구
- 발견한 내용 문서화하여 팀 내 공유
- 데이터 수집과 분석
- 주요 품목별 발주 현황 트래킹
- 경쟁사 동향 분석
- 낙찰가 추이 분석
- 실전 테스트
- 소액 물품부터 시작해 실제 등록 진행
- 다양한 키워드 조합으로 노출 효과 테스트
- 결과 분석 및 피드백 반영
우리는 매주 금요일 오후를 '데이터 분석의 날'로 정했다. 일주일간 수집한 데이터를 분석하고 인사이트를 도출하는 시간이었다.
"이 품목은 봄철에 발주가 집중되네요." "여기는 경쟁사가 3개월마다 가격을 조정하는 패턴이 보여요."
이런 분석을 통해 우리는 점점 시장의 패턴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특히 놀라웠던 것은 계절성이었다. 이는 이커머스와 매우 유사했다. 예를 들어 방역용품은 봄, 냉난방 장비는 환절기에 발주가 집중되는 식이었다.
가장 큰 발견은 '숨겨진 시장'의 존재였다. 기존 업체들이 주목하지 않던 틈새시장이 상당히 많았다.
예를 들어:
- 친환경 인증 제품군
- 스마트 기기 연동 장비
- 특수 목적 소모품
이런 분야는 등록된 업체 수가 적은 반면, 발주 금액은 꾸준했다. 우리는 이런 틈새를 공략하기 시작했다.
새로운 시스템은 분명 더 진화할 것이다.
예상되는 변화는:
- AI 기반 추천 시스템 도입
- 빅데이터 분석 도구 강화
- 블록체인 기반 계약 시스템
이는 모두 이커머스가 걸어온 길과 유사하다. 우리는 이미 이 길을 한번 걸어봤기에, 다음 변화도 예측하고 준비할 수 있다.
나는 직원들에게 이렇게 얘기한다.
"기술은 바뀌어도, 기본은 변하지 않아요. 결국 원하는 것을 찾아 제공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이는 이커머스든 조달 시장이든 마찬가지다. 시스템이 아무리 복잡해져도, 결국은 수요와 공급을 연결하는 플랫폼일 뿐이다.
이제 우리는 새로운 시대의 문턱에 서 있다. 20년 만의 변화는 위기이자 기회다. 과거의 경험이 도움이 되기도 하고, 때론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끊임없는 학습과 적응이다. 이커머스에서 배운 가장 큰 교훈도 이것이었다. 시장은 계속 변화하고, 우리도 그에 맞춰 진화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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