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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리더스 DX 스토리

실제 사례 18] 겨울 출장길의 하루

 

호텔 레스토랑의 통유리창 너머로

아침 햇살이 따스하게 비치고 있었다.

"네, 사장님. 어젯밤 편히 주무셨어요?"

직원이 밝은 미소로 화답했다.

"네, 덕분에 아주 잘 쉬었습니다.

혹시 부안 농업기술센터 가는 길 좀 알려주실 수 있나요?"

"네 물론입니다. 여기서 직진하시다가

첫 번째 삼거리에서 좌회전하시면 됩니다.

5분 정도면 도착하실 거예요."

 

창가 자리에 앉아 마지막 커피를 마시며 잠시 여유를 즐겼다.

체크아웃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지만,

서두르지 않았다.

이런 편안한 아침이 언제 또 있을까 싶었다.

 

11시 20분, 룸으로 돌아와 짐을 정리했다.

창밖으로 보이는 하늘은 맑았다.

나뭇가지들이 거세게 흔들리는 것을 보니

바람이 제법 강해 보였다.

체크아웃을 마치고 차에 올라 농업기술센터로 향했다.

 

 

 

농업 기술 센터에서 지정해 준 장소에 도착하자

직원 한 명이 먼저 알아보고 맞이해 주었다.

"어서 오세요!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안녕하세요, 납품 물품 가져왔습니다."

"바람이 제법 부네요. 조심히 옮기셔야겠어요."

"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예상했던 것보다 바람이 더 거세게 불었다.

무거운 박스들을 옮기는 동안 몇 번이나 휘청거렸다.

센터 직원들의 도움으로 무사히 납품을 완료할 수 있었다.

 

납품 요구서에 서명하고 차에 오르니

벌써 점심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라디오를 켜자 갑자기 긴급 뉴스가 흘러나왔다.

"경기도 지역에 폭설 주의보가 발령되었습니다.

시간당 10cm 이상의 눈이 예상되며..."

순간 머리가 복잡해졌다.

앞으로 4일간의 지방 출장 일정이 모두 꼬일 수 있는 상황이었다.

특히 연천 납품이 걱정됐다.

 

잠시 휴게소에 들려 일정표를 다시 확인했다.

고민 끝에 남원 양계장은 꼭 들러야겠다고 결심했다.

내비게이션을 보니 남원까지 1시간 20분.

전라도 안에서의 이동이라 가볍게 생각했던 게 실수였다.

차량 히터를 높이고 라디오 볼륨을 조금 올렸다.

도로는 한산했지만, 불어오는 바람이 차체를 흔들었다.

 

 

양계장에 도착하자 형님이 작업복 차림으로 나와 반겼다.

"어이구, 이런 날씨에 여기까지 왔나?"

"네, 지나가는 길에 들렀습니다. 살균제 샘플 가져왔어요."

"고마워. 근데 오늘은 좀 바쁜데..."

"네, 이해합니다. 잠깐만 설명드리고 가겠습니다."

양계장 안으로 들어서니 새로 들어온 병아리들이 가득했다.

겨울철이라 더욱 신경 쓰이는 모양이었다.

평소 같으면 차 한잔하면서 이야기를 나눴겠지만,

오늘은 상황이 달랐다.

형님의 얼굴에는 피로가 가득했다.

 

양계장 사무실로 들어서자 따뜻한 온기가 느껴졌다.

벽에 걸린 온도계가 25도를 가리키고 있었다.

구석에서는 작은 TV에서 날씨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잠시 살균제 사용법을 설명하는 동안

밖에서는 사료차가 도착했다.

사료를 넣는 동안 내 차를 뺄 수 없어

대화를 이어 나갈 수 있었다.

남원의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았다.

사료차가 빠지자 나는 서둘러 출발했다.

"형님, 눈이 많이 온다는데 이만 가봐야 할 것 같아요."

"그래, 그래야겠네. 살균제 효과 보고 피드백을 전달해 줄게."

"네, 다음에 올 때는 미리 연락드리고 올게요."

 

사무실을 나서는데 형님이 따라 나오셨다.

"아, 맞다! 이거라도 가져가게." 형님은 계란 한 판을 내미셨다.

"형님, 괜찮아요..."

"뭘, 이 정도야. 우리 양계장 계란이 제일 맛있어.

집에 가서 와이프랑 같이 먹어."

"감사합니다. 그럼 조심히 계세요."

차에 오르며 백미러로 형님을 보았다.

차가운 바람 속에서도 손을 흔들어주시는 모습이 보였다.

비즈니스 관계로 시작했지만,

어느새 가족 같은 사이가 된 것 같았다.

 

 

 

구름이 점점 더 짙어지고 있었다.

퇴근 시간 정체는 어쩔 수 없겠지만,

눈이 내리기 전에 서울에 도착해야 했다.

양계장을 나와 고속도로로 향하는 길,

차 안에는 형님이 주신 계란 한 판이 조수석에 놓여있었다.

라디오를 켜자 교통방송이 흘러나왔다.

"현재 충청북도 지역에 눈이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2-3cm의 적설량이 예상되며..."핸들을 꽉 쥐었다.

아직 해가 지기 전에 집에 도착해야 했다.

 

휴게소에 들러 잠시 쉬어가며 와이퍼를 점검하고

워셔액도 보충했다. 이런 날은 방심할 수 없다.

휴게소 매장에서 따뜻한 커피를 사서 창가에 앉았다.

옆자리에 남성 두 분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이야기를 나눴다.

"아침부터 운전대 잡았는데 이제야 쉬나..."

"나도 그래. 이러다가 눈길 운전해야 할까 봐 걱정이야."

"제설작업을 해도 퇴근시간이랑 겹치면..."

잠시 후 핸드폰이 울렸다.

"여보세요, 과장님."

"사장님, 지금 어디쯤 오세요? 날씨가 심상치 않네요."

"방금 남원 빠져나왔어요. 휴게소에서 잠깐 쉬고 있어요."

"아... 그러면 올라오실 때 조심하세요. 벌써 눈이 오고 있어요."

 

다시 운전대를 잡았다.

하늘은 점점 더 회색빛으로 변해갔고, 기온이 떨어진 듯했다.

차량 외부 온도계는 영하 1도를 가리키고 있었다.

빙판이 생길까 걱정되는 온도였다.

"여보세요, 여보?" 아내가 전화를 걸어왔다.

"응, 나 아직 충청도 못 갔어. 거기는 눈 와?"

"여기는 조금 오는데, 뉴스에서는 퇴근 시간 되면 본격적으로 온대?"

"응, 저녁은 집에 가서 먹을게."

"알았어. 천천히 와. 애들도 아빠 걱정하네."

서산을 지나자 눈발이 날리기 시작했다.

와이퍼를 켜고 속도를 80km로 낮췄다.

고속도로는 예상보다 한산했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일찍 퇴근했거나,

아예 이동을 포기한 모양이었다.

 

"여보세요, 팀장님."

"모레 연천 납품은 제가 다음 주로 조정하겠습니다."

발안을 지날 무렵에는 눈이 제법 쌓이기 시작했다.

차 안에서는 눈에 관한 음악이 흘러나왔다.

평소 같았으면 지루했을 음악인데,

오늘따라 마음을 차분하게 해주는 것 같았다.

오늘 하루가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아침에 호텔에서 시작해서, 부안 농업기술센터,

그리고 남원 양계장까지...

 

화성 부근에 들어서자 휴대폰이 또 울렸다.

"여보세요, 과장님."
"사장님, 내일 아침 회의는 화상으로 진행하기로 했습니다."

"아, 잘 됐네요. 눈이 많이 오나요?"

"네, 벌써 많이 쌓였어요. 조심히 오세요."

집 근처에 들어설 때쯤엔 이미 해가 저물어 있었다.

주차장에 차를 대고 시동을 끄니,

차 지붕 위로 하얀 눈이 소복이 쌓이는 게 보였다.

조수석의 계란을 조심스럽게 들고 내렸다.

 

예상치 못한 일정 변경과 날씨 때문에 피곤할 법도 한데,

묘하게 마음이 따뜻했다. 계획대로 되지 않는 상황에서도,

그 속에서 새로운 인연과 경험을 만난 것 같다.

현관문을 열자 따뜻한 온기와 함께

아이들의 반가운 목소리가 들렸다.

"아빠!"

하얀 눈이 내리는 창밖을 보며 생각했다.

내일은 또 다른 하루가 시작될 것이다.

비록 계획은 바뀌었지만,

그 속에서도 새로운 가능성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휴대폰을 꺼내 호텔 앱을 열었다.

다음 부안 출장 때를 위해 즐겨찾기에 추가해뒀다.

이번 출장도 과연 또 하나의 추억이 날아와

살포시 내려앉으려나? 그래도 평범한 날이 아니니

기억에는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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