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제조사를 찾았다.
이제는 낯설지 않은 공장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처음 방문했을 때의 어색함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지 오래였다.
"아, 김 대표님 오셨어요?"
현장 직원들이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제조사 대표님과 나는 독점 계약서를
작성하기 위해 회의실에 마주 앉았다.
이미 수차례 논의를 거친 터라
계약서 내용은 깔끔했다.
서로의 역할과 책임이 명확했고,
이익 분배도 공정했다.
"이제 진짜 시작이네요."
대표님이 계약서에 도장을 찍으며 말씀하셨다.
"네, 이제부터가 진짜죠."
제품 개발을 위한 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첫 번째 과제는 제품명이었다.
"요즘 트렌드는 어떤가요?"
대표님이 물으셨다.
"음... 시중에 나와 있는 제품들을 보면..."
나는 태블릿을 꺼내 시중 제품들의 리스트를 보여드렸다.
비X, 다X니, 옥X크린...
이름 하나하나가 수많은 고민 끝에 탄생했을 것이다.
"GPT 같은 AI한테 물어보면 된다던데..."
"아직은 그쪽으로는 잘 모르겠네요.
직접 고민해보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우리는 제품명 하나를 정하기 위해 수일을 고민했다.
화이트보드에는 수십 개의 이름이 적혔다가 지워졌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티끌 하나 남지 않는다...
이게 우리 제품의 핵심 아닐까요?"
대표님의 눈이 반짝였다.
"우리... 제로티스는 어떨까요?"
순간 회의실이 조용해졌다.
모두가 그 이름을 곱씹어보는 듯했다.
"제로티스... 좋은데요?"
생산팀장님이 먼저 반응하셨다.
"발음도 좋고, 의미도 명확하고..."
대표님도 고개를 끄덕이셨다.
이렇게 제품명이 정해졌다.
이제 남은 건 시간과의 싸움이었다.
올해 안에 조달청 등록을 마치려면 KCL 인증이 시급했다.
"인천 인증센터에 가보시죠."
대표님의 제안에 나는 즉시 동의했다.
다음날 아침 일찍,
우리는 인천으로 향했다.
차 안에서 대표님이 말씀하셨다.
"사실 저도 처음이에요. KCL 인증은..."
"네? 처음이시라고요?"
"네, 그동안은 다른 인증만 받았거든요.
이번이 첫 KCL이에요."
왠지 모를 동지애가 느껴졌다.
우리 모두에게 이번 프로젝트는 새로운 도전이었다.
인증센터에 도착해서 들은 소식은 예상보다 더 힘들었다.
"영업일 기준 45일 정도 소요됩니다."
"45일이요?"
"네,
추석 연휴까지 감안하면 실제로는
2달 넘게 걸릴 수 있어요."
발걸음이 무거웠다.
하지만 이대로 시간만 기다릴 수는 없었다.
"대표님,
그동안 생산라인을 정비하는 게 어떨까요?"
"좋은 생각이네요. 어차피 해야 할 일이니..."
다행히 기존 연마제 설비가 있어서
큰 변경은 필요 없었다.
몇 대의 기계만 추가하면 됐다.
"기계 좀 보러 다녀야 할 것 같은데...
같이 가주실 수 있나요?"
사실 나는 기계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었다.
어떤 기계가 어떤 용도인지도 모르는 상태였다.
그저 대표님과 시간을 더 보내고 싶었다.
이 분야의 전문가인 대표님에게서
배울 게 많다고 생각했다.
2주 동안 우리는 기계 제작 공장들을 방문했다.
대표님의 눈은 매서웠다.
"이 부분은 스테인리스로 해야 합니다.
세제가 닿는 부분이라..."
"아, 그렇군요."
나는 열심히 메모를 했다.
"혼합기도 중요한데...
회전 속도 조절이 가능해야 해요.
점도가 다르니까."
대표님의 설명을 들으며 깨달았다.
30년 가까이 이 일을 해오신 분의 노하우는
책에서 배울 수 없는 것들이었다.
마침내 혼합 제품을 용기에 담는 기계를 구입했다.
대표님은 공장 레이아웃도 직접 그리셨다.
"여기에 혼합기를 두고...
이쪽으로 컨베이어를...
그리고 여기 마지막에 포장..."
"대표님, 정말 대단하세요.
이렇게 다 계산이 되시나요?"
대표님이 웃으셨다.
"실수하면서 배운 거죠.
예전에는 동선 하나 잘못 만들어서
직원들 고생시킨 적도 있어요."
설비 배치가 끝나고 테스트 생산에 들어갔다.
처음에는 삐걱거렸지만,
조금씩 안정화되기 시작했다.
"이제 남은 시간에 다른 인증들도 알아봐야..."
우리는 조달청 등록에 필요한
추가 인증들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리스트를 만들고, 우선순위를 정했다.
"이건 한 달 정도면 될 것 같고..."
"이건 좀 더 걸릴 텐데...
"김 대표님 만나고 나서... 이제는 확신이 생겼어요.
우리가 해낼 수 있을 거라는."
소주잔을 부딪치는 소리가
조용한 술자리에 울렸다.
"저도 처음엔 많이 불안했어요.
제가 과연 이 큰 프로젝트를 해낼 수 있을까..."
"근데 지금은요?"
대표님이 웃으시며 물으셨다.
"지금은... 대표님이 계셔서 든든합니다."
그날 밤,
우리는 평소보다 조금 늦게까지 이야기를 나눴다.
1차 통과의 기쁨도 잠시,
이제 남은 과정들을 어떻게 준비할지 계획을 세웠다.
다음날 아침,
공장에 도착하자 직원들이 반갑게 맞이해주었다.
"축하드립니다, 대표님들!"
평소엔 조용하던 작업장이 웃음소리로 가득했다.
모두의 얼굴에서 자부심이 느껴졌다.
이제 우리 제품은 단순한 세제가 아닌,
우리 모두의 꿈이 되어있었다.
"자, 이제 2차 시험을 준비해볼까요?"
대표님의 말씀에 모두가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창밖으로 늦가을의 맑은 하늘이 보였다.
첫 성공의 기쁨을 안고,
우리는 다음 도전을 향해
한 걸음 더 나아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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