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경기도 안산.
창밖으로 시화호에서 불어오는 찬 겨울바람이
윙윙거리는 소리를 내며 아파트 창문을 때렸다.
오늘도 어김없이 5시 30분,
알람 소리가 울리기도 전에 나는 눈을 떴다.
벌써 이런 생활 시작한 지 어느덧 1년이 되어가고 있었다.
"추운 날이군..."
나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 주방으로 향했다.
커피 머신에서 원두 갈리는 소리가 울렸다.
에스프레소 향이 집 안을 가득 채우는 동안,
나는 평소처럼 스마트폰으로 오늘의 날씨를 확인했다.
아침 최저기온 영하 3도,
오후에는 영상 4도까지 오른다는 예보였다.
"오늘 파주까지 가야 하는데, 다행히 눈은 안 올 것 같네."
집무실로 사용하는 방 안에는 듀얼 모니터가 설치된 책상이 있었다.
왼쪽 모니터에는 나라장터 홈페이지가,
오른쪽에는 엑셀 파일들이 늘 대기하고 있었다.
액체비누 KCL 인증을 기다리는 동안,
나는 매일 아침 이렇게 조달청 공고들을 꼼꼼히
살펴보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조달의 시작
나는 오늘도 새로 올라온 MAS 공고 보았다
아침 9시,
내 지인들에게 공고를 분석한 아이템 정보를 보낸다.
조달 공고를 본 지인들은 나에게 전화를 한다.
"네 형님. MAS 신규 등록 건입니다."
"네, 이번에는 좀 특이한 것 같아서요.
납품 실적이랑 기술 인증 요건이..."
나는 커피를 한 모금 더 마시며
공고문을 자세히 설명해 준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조달청 하면 입찰만 생각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훨씬 더 복잡하고 다양한 시스템이 존재했다.
첫째로 우수 조달.
말 그대로 조달의 최상위 등급이다.
이곳에 등록되기 위해서는 수많은 인증서와 특허가 필요하고,
약 2년의 시간과 1억 원 이상의 비용이 들어간다.
둘째로 다수 공급자 계약, 일명 MAS.
이는 마치 쿠팡 같은 이커머스 시스템과 비슷했다.
현재 380개의 제조사와 1만 개가 넘는 공급 물품이
등록되어 있는 거대한 플랫폼이었다.
그리고 벤처 나라. 제조사만 등록 가능한 특별한 공간이었다.
마지막으로 혁신 장터는 특허를 가진 제조사들을 위한 공간으로,
우수 조달만큼은 아니지만
상당히 까다로운 등록 조건을 가지고 있었다.
오전 10시,
용인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오늘의 일정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용인의 제조사와 미팅을 마치고 나면,
구로동에서 중국 업체와의 미팅이 잡혀있었다.
최근 생분해 제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다음 주로 예정된 중국 출장 계획도 세워야 했다.
하루가 바쁘게 흘러갔다.
용인에서 제조사와의 미팅을 끝내고 구로동으로 향했다.
중국 업체와의 미팅에서는 생분해 제품에 대한 깊이 있는 논의가 오갔다.
다음 주 중국 출장 일정도 구체화되었다.
오후가 되어 파주로 향했다.
사실 이 미팅은 그저 평범한 마케팅 상담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운명이란 건 참 예측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날의 파주 방문은 내 사업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차를 몰고 파주로 향하는 길, 겨울바람이 차창을 때렸다...
예상치 못한 기회
도착해서 생산라인을 둘러보는데,
문득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뭔가 남다른 게 있었다.
시설이며, 제품이며...
그리고 담당자의 설명을 듣는 순간
나도 모르게 숨을 들이켰다.
조달청 아이템을 고루는 것 중 어려운 건
일상에서 쓰는 말과
조달청에서 쓰는 말이 다르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블랙박스가 조달청 용어로
자동차 영상 저장 장치이다
나는 아이템을 확인하고 조달청에서 찾아봤다.
여러 검색을 해도 나오지를 않았다.
그러다 찾게 된 용어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연간 800억 발주?'
그리고 아직 노출이 되지 않은 아이템이었다.
한 업체도 등록이 되지 않았는데 800억 규모라...
순간 온몸에 전율이 흘렀다.
이건 단순한 마케팅 건이 아니었다.
훨씬 더 큰 기회였다.
동물적인 감각이 이것을 놓치면 안 된다고 아우성쳤다.
미팅이 끝나자마자 주차장에서 바로 전화기를 꺼냈다.
"여보세요, 리더스 dx 김재웅입니다."
"네, 안녕하세요."
열린 컨설팅의 이 대표였다.
"제가 이번에는 제조를 해야 될 것 같은데요."
"네? 갑자기요? 어떤 아이템인가요?"
그렇게 우리는 한참을 통화했다.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어떤 준비가 필요한지...
전화기 너머로도 이 대표의 목소리에서
이 건의 중요성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저녁 6시 30분,
제조사 담당자와의 미팅이 잡았다.
오후 내내 머릿속은 복잡했다.
지금까지는 유통만 해왔는데, 이제는 제조까지...
큰 도전이 될 것이다. 하지만 이런 기회는 흔치 않다.
망설일 시간이 없었다.
저녁 미팅은 더욱 구체적이었다.
계약 조건, 생산 방식, 품질 관리...
하나하나 꼼꼼히 따져가며 이야기를 나눴다.
밤이 깊어가도 피곤함도 느끼지 못했다.
오히려 가슴이 뛰었다.
오늘 하루를 되돌아봤다.
아침에는 평범한 마케팅 상담을 위해
떠났던 출장이었는데,
제조업체로의 전환이라는 거대한 도전 앞에 서있다.
두렵기도 하지만, 이상하게도 설렌다.
내일은 인천 청라에서 또 다른 미팅이 잡혀있었다.
집까지 가기에는 너무 늦은 시간.
피로가 몰려오는 것을 느끼며
파주 근처 호텔을 검색했다.
운전대를 잡은 손이 미세하게 떨리는 걸 보니,
하루가 얼마나 긴장감 넘치는 시간이었는지
새삼 실감이 났다.
호텔 체크인을 하고
룸서비스로 간단한 식사를 주문했다.
샤워를 마치고 침대에 누워서도
머릿속은 여전히 복잡했다.
노트북을 켜고 오늘 미팅에서 받은 자료들을
다시 한 번 꼼꼼히 살펴보았다. 800억 규모의 시장.
그 숫자가 주는 무게감이 어깨를 누르는 것 같았다.
이 대표와 다시 한 번 통화를 했다.
"내일 청라에서 미팅 끝나고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이번 건은 정말 신중하게 접근해야 할 것 같아서요."
"그래요. 잘 판단하셨어요.
제조업은 유통과는 차원이 다르니까요.
철저한 준비가 필요합니다."
통화를 끊고 창밖을 바라보았다.
늦은 밤, 파주 산업단지의 불빛들이 멀리 보였다.
저 불빛 속 어딘가에 내일의 나를 기다리고 있을
새로운 도전이 있다.
매일 아침 조달청 공고를 확인하며 쌓아온 경험들,
수많은 미팅을 다니며 배운 것들...
모든 것이 오늘의 이 순간을 위한 준비였던 것 같다.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이제 나는 더 이상 단순한 유통업자가 아닌,
제조업자로서의 새로운 길을 걷게 될 것이다.
설렘과 두려움이 교차하는 밤이었다.
알람을 맞추고 눈을 감으며 내일의 일정을 되새겼다.
아침 일찍 청라로 가야 한다.
그곳에서의 미팅도 중요하지만,
머릿속은 이미 제조업 전환이라는 거대한 숙제로 가득 찼다.
밤이 깊어갈수록 호텔 창 너머로 보이는
도시의 불빛들이 하나둘 꺼져갔지만,
내 가슴속의 불빛은 더욱 강하게 타오르고 있었다.
내일은 또 다른 도전의 시작이 될 것이다.
창밖으로 들려오는 겨울바람 소리를 들으며,
나는 천천히 잠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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